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화도 조약 (문단 편집) == 경과 == ||[youtube(V4wfO2Z7Icw)]|| || 강화도 조약 || 좌의정 [[이최응]]이 서계 사본을 본 후 일의 가부(可不)를 결정하자는 시간끌기 대책을 내놓았으나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1876년 2월 9일(고종 13년 1월 15일), 쿠로다 전권 일행은 강화도에 기항해, 예포라고 하며 각 군함으로부터 위협 발포를 하면서 400명의 의장병을 이끌고 강화도에 상륙했다. 조선은 청에 도움을 청했으나, 청은 알아서 해라라고 하며 회피했다. 조약을 체결하기 전에 이미 부산에서의 일본 해군의 행패와 난동, 쿠로다 일행의 위용, 청국의 소극적 무관심 등 조선이 일본에 외교적으로 맞설 만한 요소는 없었다.[* 채중묵, 제3장 개국 외교 조일 수호 조약] 모두 세 번의 회의를 열었는데, 일본의 횡포와 막무가내적 태도, [[운요호 사건]]에 대한 억지 등에 조선 측은 이리저리 휘둘렸다. 이 때 조선 정부에선 [[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적극 지지하던 위정척사 세력과 대외 개방을 주장하는 개화파 세력의 대립으로 의견이 제각각이었으나 이유원, [[박규수]], [[오경석]] 등 개화파의 주장과 [[이홍장]]의 권고[* '만약 조선이 일본과 싸워서 질 경우 일본은 조선을 무력으로 먹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청나라가 위태로워진다. 그렇기에 조선이 일본과 조약을 맺도록 하는 게 안전하다.']로 바뀐 [[고종(대한제국)|고종]]의 적극적 개항 의사에 따라 '''개국(開國)'''을 결정하게 됐다. 하지만 회담 내내 조선이 일방적으로 휘둘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 측 대표 [[신헌]]은 [[이노우에 가오루]]의 각종 공격에 매우 논리적으로 답변하면서 조금도 꿀리지 않았다. 운요호에 발포한 군인들을 처벌하라는 요구에도 "낯선 배가 쳐들어오는데 변방을 지키는 신하가 제 임무를 한것에 어떻게 벌을 주느냐?"라고 단호하게 거절했고 나중에는 [[이노우에 가오루]]가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배에 있는 우리 군사들이 어떻게 굴지 모른다고 군사적 옵션으로 위협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신헌]]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싸늘하게 "이젠 무력으로 위협까지 하는구만, 이게 이웃나라 사이의 예의냐?"라고 대답하여 뻘쭘해진 이노우에가 "내가 잘 타일러 놨으니 군사들이 가만있을 것이다."라고 물러서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강화도 조약울 '조선이 일본의 무력에 굴복하여 체결하게 된 불평등 조약'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의 연구에서는 강화도 조약을 무력에 의한 강요보다는 '서구식 외교에 무지했던 조선이 일본에 속아서 체결한 불평등 조약'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일단 이미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에서 프랑스군과 미군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하여 큰 피해를 봤을 때도 꿈적하지 않던 조선이 몇년 뒤에 고작 250톤급 전투함 1척이 벌인 소요 때문에 일본의 군사력에 쉽게 굴복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실제로 일본과의 회담 내내 조선은 움츠러든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회담을 하는 동안 똥줄이 탔던 것은 일본으로, 사실 1870년대 내내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던 일본 정부는 당분간 전쟁을 할 의도가 없었다. 오히려 일본 정부는 만약 회담이 결렬되어 일본 내부에서 강경론이 통제를 벗어날 정도로 득세하는 사태를 피해야 했어서, 조선에 말로만 위협을 했을 뿐 실제로는 너무 강경하게 나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의 무력 시위도 강화도 조약의 한 가지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유일한 원인은 아니며, 조선 내부의 상황과 같은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이 합쳐져서 강화도 조약에 이르게 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정척사파들이 일본과의 협상을 극렬하게 반대하면서 위정척사파의 지지를 받는 흥선대원군이 다시 권력에 복귀할 기미가 보였고, 이를 막기 위해 고종과 민씨 일파가 일본과의 협상을 빨리 마무리할 필요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 논지에 따르면 서구식 외교에 무지하던 조선이 협상을 서두르면서 일본이 내민 조항을 면밀히 검토하지 못해 결국 불평등 조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